가지록은 시작한 지 두 시즌이 지났고 이제 세 번째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비로소 한 페이지를 넘긴 느낌이 들며, 많은 고민 끝에 시작한 일이지만 현실을 마주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이 변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즐기지 않습니다. 성격상 타인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어려웠고, 모든 것이 복합적인데 간결하게 표현하기 어려웠으며, 이야기가 원하는 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옷에 대한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해외에서 일할 때, 당시 보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천연 섬유인 면, 리넨, 헴프 등으로 만든 원단을 많이 사용하는 브랜드였는데, 그러한 섬유로 이루어진 원단을 사용한 이유는 그저 멋져 보였고 마음에 들어서였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보스에게 친환경적인 이유로 이런 원단을 사용했냐고 물었을 때, 보스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왜 정정해 주지 않고 거짓말을 했냐는 질문에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렇게 느낀다면 그것도 정답이라고 생각해서 부정하기 싫었다고 말했습니다. 가지록의 옷들과 브랜드 자체가 그렇게 비치고 받아들여지길 바랐습니다. 설명하지 않고 각자가 보고 싶은 대로 보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조금 변했습니다. 기본적인 성향과 옷, 브랜드에 대한 가치관은 그대로지만 추가적인 생각들이 생겼습니다.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브랜드는 특히 패션 브랜드는 나 혼자만으로 운영되고 성장하지 않으며, 생산에 도움을 주시는 분들과 제품을 소개해 주시는 편집숍 분들, 그리고 제품을 접하거나 실제로 착용하시는 소비자분들과 함께 만들어지고 성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 어떤 맥락에서 무엇이 시작되고 무엇이 진행되는지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찾아오지 않으시면 볼 수 없는 이 공간에라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담아보려고 합니다.
가지록은 기본적으로 옷을 만드는 브랜드입니다. 의복으로서 목적을 잃지 않고, 각각의 제품에 걸맞은 이유 있는 디테일과 어울리는 원단, 봉제 등을 선택하여 가능한 한 최고와 완벽에 가까움을 추구합니다. 때로는 얇고 느슨하게 짜인 원단을 사용하기도 하고, 두껍고 밀도가 높고 탄탄하게 짜인 원단을 사용하기도 하며, 깔끔하고 견고한 의류에는 촘촘한 땀수와 많은 봉제를 선택하기도 하고, 빈티지한 무드의 의류에는 넓은 간격의 땀수와 최소한의 봉제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그 옷의 목적성에 기반합니다.
완벽에 가까움을 추구한다는 말 다음에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의류라는 큰 범주 아래에는 절대적인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어떤 옷은 거친 느낌 때문에 비싸고, 어떤 옷은 부드러운 느낌 때문에 비싸기도 하며, 같은 이유로 인해 저렴한 가격을 가지기도 합니다. 어느 일본의 한 브랜드는 데드스탁 원단을 사용했다는 증거로 원단 불량을 보란 듯이 표시하여 자랑합니다. 누군가에겐 불량으로 환불받아야 하는 요소이지만 판매하는 입장에서도 판매하지 못할 혹은 염가로 처분해야 할 골치 요소가 진짜 빈티지 데드스탁 원단이라는 증거로 사용되었으며 그 옷 자체도 그 원단과 특징이 아주 잘 어울리는 완벽한 옷이었습니다.
의도적으로 꾸며낸 아름다움보다는 이처럼 옷으로서의 목적성을 잃지 않고, 티셔츠면 티셔츠, 셔츠면 셔츠, 각각의 제품으로써 적절한 선택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좋은 옷을 개개인이 오래 입어낸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옷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지록은 특정한 스타일과 형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좋은 옷을 타협 없이 만들고 싶습니다.